12월 19일, 울산시 울주군의 가난한 어촌마을에 자리잡은 금어사(金魚寺)에서는 조촐하지만 뜻 깊은 법회가 열렸다. 이 절 주지 지월 스님이 지난 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절을 해 마침내 300만배를 회향한 것이다. 재개발로 마을이 허물어지고 사람들도 하나 둘 고향을 등지고 있지만 이날 마을은 오래간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이번 회향은 당사자인 지월 스님은 물론 마을사람들에게도 참으로 각별했다. 스님의 300만배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신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음을 모두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지난 12월 19일 3년간의 절수행 끝에 300만배를 회향한 울산 금어사 지월 스님.
스님이 이 마을에 자리 잡은 것은 지난 2000년말. 공업단지에 밀려 하루가 다르게 척박해지는 이곳에 희망을 심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였다. 스님은 폐가를 수리해 법당을 꾸미고 금어사란 그럴듯한 이름도 붙였다. 항상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깨어있는 수행자로 살고, 또 이곳을 수행도량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에서였다.
밤 11시부터 새벽까지 절수행
스님은 마을 아이들을 모아 서예, 한문, 영어, 예절 등을 가르치고 마을이나 부두 등도 청소했다. 스님이 본격적인 절수행에 착수한 것도 이 무렵이다. 절은 자신을 낮추어 아만을 굴복시키고 업장을 녹일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그 때가 2001년 1월 1일. 스님은 한 배 한 배 정성껏 올리며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했고, 모든 이들의 행복을 발원했다. 처음 낮에 하던 절도 얼마 후 밤 11시부터 새벽 4시 30분까지 하는 것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낮에는 불자들의 상담자역할을 해야 했고 법회, 신도관리, 사찰업무 등도 산적해 있기 때문이었다. 절을 열심히 하는 스님을 보면서 불자들도 한 사람 두 사람 따라하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였다.
지극한 下心…아이에게도 삼배
그러나 수행하는데 마장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했던가. 80만배께 접어들 무렵이었다. 절만 시작하면 머리는 꼬챙이로 찌르는 듯 고통스러웠고 무릎은 떨어져나갈 듯 아팠다. 열도 38~39도를 오르내렸다. 세상에 이 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성싶었다. 옷은 땀에 흠뻑 젖어 뚝뚝 흘렀고 눈물도 하염없이 흘렀다. 낮에 무릎 찜질을 하면서도 스님은 여기서 멈추느니 차라리 절을 하다 죽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몇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육체적인 건강도 회복됐다.
“그만큼 내 업장이 두터웠던 게지요. 부처님께서 서원을 더 굳건히 하라는 뜻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덕분에 첫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한 배 한 배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으니까요.”
100만배, 200만배가 땀과 더불어 흘러갔고 회향을 얼마 앞둔 지난 10월 28일. 한참 절을 하고 있던 스님은 갑자기 좬법화경좭에 나오는 상불경(常不輕)보살님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찬탄하고 예배했던 보살님. 스님은 모든 중생들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왔고, 환희심이 솟아올랐다.
스님은 다음날부터 공부하러 온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했다. 신도들이 찾아와도 마찬가지였다. 말도 누구에게나 극진한 존칭어를 사용했다. 처음 아이들은 물론 신도들도 펄쩍 뛰었다. 어떻게 스님의 절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스님은 그러나 “모든 이가 미래에 성불할 부처님인데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느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현실이 어렵다고 절망하고 주저앉아서는 안됩니다. 내가 딛고 일어선다면 병, 고통, 장애는 물론 죽음까지도 모두가 부처님의 커다란 은혜인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타인 위해 절수행”
스님은 늦깎이 출가자다. 평생 군대에서 생활한 스님은 80년대 중반 폐결핵을 앓으며 불교를 만났고 이후 재가법사로서 10여년 간 포교에 앞장서 왔다. 그러던 중 90년대초 3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산 백양산 마애지장보살님을 찾아가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한 후 마침내 출가를 단행했다.
300만배 회향법회를 마친 스님은 “죽는 날까지 절 수행은 계속할 것”이라며 “내가 하는 절이 가난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